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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기도회

[마태복음] 17장 예수님 변모(變貌)와 간질병을 고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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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1회 작성일 2024-10-09 14: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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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변모(變貌)>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1)

 

 현대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높은 산은 헤르몬 산입니다. 성경에는 헐몬(시 133:3)으로 나와 있는데, 이스라엘 편에서는 약 2,200~2,300미터, 시리아에서는 약 2,800 정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높은 산으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려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함이지요. 왜 다른 9명의 제자들은 데려가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따로 이 3명에게만 놀라운 기적을 보여 주신 일도 있었지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제자 그룹 중에 이너써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어떤 것이든 계급을 나누려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해석을 나눴는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여 주신 일은 이 세 제자들에게 매우 영광스럽고 복된 일일 것입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2)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은 앞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표적인 사건이지요. 원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의 보좌를 떠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영광스런 왕이신데,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서 우리와 같이 되시니까 제자들이나 우리나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 제자들도 변모되신 예수님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눈을 뜨고 해를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3)

 

 그런데, 예수님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가 같이 있었다고 소개합니다.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예수님 시대보다 1400년도 더 예전 사람이고, 엘리야도 800년 전 사람인고, 분명 제자들은 보지도 못했던 예언자들인데 어떻게 단언합니까?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모세와 엘리야인 것을 알았겠지요.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4)

 

 베드로가 너무 황홀하여서 이곳에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가집을 짓겠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모세와 엘리야도 참 어이가 없었겠지요? 무슨 초막이 대단한 집이라고 여기에 모시겠다고 합니까!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5-6)

 

 제자들이 모세와 엘리야를 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더 충격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자, 엎드려서 심히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 제자들에게 무슨 책망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핵심적인 내용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라는 것이지요. 

 

 히브리서에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 뒤에는 다른 무슨 말씀이 없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7-8)

 

 세 제자들은 잠시 동안 예수님의 변모된 모습과 모세와 엘리야를 보았는데, 다시 현실로 돌아옵니다. 우리도 앞으로 전혀 보지 못했던 영적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사전에 어느 정도 알고 가야 놀라지 않지, 모르고 가게 되면 얼마나 충격을 받겠습니까?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결국에는 다 말하게 될 텐데… 그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우리 성도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안다고 해서 언제나 어디서나 다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당한 때가 있고, 시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혹은 성령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할 때, 모든 것을 다 알려 주고 시작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열어 주시고 보여 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운 신학용어로, ‘점진적 계시’라고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금방 낙심하고 좌절하고 믿음에서 떨어집니다.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0)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나 율법이나 구약성경을 좀 안다는 종교지도자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라면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오게 예언(말4:5)이 되어 있는데, 아직 엘리야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엘리야 일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메시야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설프게 성경을 알면,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지 않게 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신학자들이 있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오해하고 곡해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거의 대부분 믿지 않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어설프게 그런 신학자들 밑에서 배우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도 역시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이들도 역시 예수님 이름을 팔아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지, 진짜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11-13)

 

 하나님은 언약하신대로 예수님보다 먼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요한이 한 일, 예수께서 말씀하신 회복하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임을 자각하게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서 메시야가 필요함을 느끼게 한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메시야’를 바라게 합니다. 어려운 말로 ‘메시야 대망(待望) 사상’ 입니다. 

 

 메시야를 바라거나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오셔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민 것에 대해서 과대망상을 하거나, 낙심하여서 로마에 철저하게 동화되거나 했습니다. 세속화되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종교적이 되거나 했습니다. 오만과 교만과 독선으로 가득차든, 이왕 더럽혀진 몸, 더 편하고 세상을 즐기면서 살자는 쾌락주의로 빠져가며 양극화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선포한 것이 요한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깨웠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뵙고, 자신의 제자들은 물론,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임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4-15)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하산(下山)하시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시며 내려오셨는데, 산 아래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들과 그들에게 아들을 고쳐달라는 아버지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해결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높은 산에서 내려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 땅에 아직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실랑이를 하지만 해결이 안 됩니다. 모든 인류가 다 고민하고 노력해도 안 됩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크리스챤들이 있습니까? 우리 나라 국회의원 중 삼분지 일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정치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오히려 더 일을 꼬이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이 오늘날의 현실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사건으로 보입니다. 즉, 예수님 다시 오셔서 모든 일을 바로잡기 전까지는 이 땅에는 여전히 혼란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투성이로 가득할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라고 봅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6)

 

 이것이 저의 자화상이고, 수많은 목회자들의 자화상일 것입니다. 저나 수많은 목회자나 다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능력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들은 단지 예수님을 전할 뿐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7-18)

 

 우선 제자들이 진단부터 잘못되었지요! 이 간질병을 앓는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 무슨 바이러스나 어떤 균 때문이 아니고, 귀신이 들어가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어 이 아이를 고치셨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아무 병자든지 다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면서 막 때리고 하다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산속 기도원 같은 데서 일어나, 매스컴에 회자되고 있지 않습니까? 엉뚱한 처방을 해서 사람을 죽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목회자들이 귀신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어떤 균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것인지 올바르게 진단할 실력도 능력도 없습니다. 병원 의사에게 보낼 환자인지, 귀신을 쫓아내야 할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언제 이 아이를 두들겨 패면서 귀신을 쫓아내십니까? 왜 사람을 때려서 죽게 만듭니까? 잘못된 거짓 목사들이 세상을 미혹합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19)

 

 간질병 걸린 아이와 아버지가 돌아가고 예수님 곁에 제자들만 있을 때,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지 묻습니다.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10장에서는 제자들이 분명히 귀신을 쫓아내기도 했고 병든 사람을 고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없을 때, 자기들은 아무것도 못한 것인지 묻는 것이지요. 

 

 제자들이나 성도들이나 예수님 곁에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즉, 우리 곁에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0)

 

 예수님은 ‘믿음’이 문제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서 마가복음에는 이런 류는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기도’이고, 기도하면 산에게 명령해도 다 이뤄진다는 의미일까요?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질 아이를 고쳐주실 의지와 뜻이 있으면 고쳐지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쓸데없이 산을 옮깁니까? 무슨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 땅 장사라도 할 요령으로 기도하면 다 이뤄진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산을 옮기실 뜻과 계획이 있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뤄지는 것 뿐입니다. 

 

 말씀을 오해하면, 엉뚱한 짓을 많이 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 것을 하나님이 일 하도록 관철시키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욕심일 뿐입니다. 자기가 무슨 대단한 사람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돈만 많다면,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를 가져와서 산을 깎겠다고 하겠지만,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을 ‘기도’를 통해서 쉽게 이뤄보겠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행하신 일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을 참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며 주인으로 알게 하기 위해서 귀신을 쫓아내시며 질병도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된 우리들도 해야 할 일, 사명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증거하는 일이지요. 그 목적에 합하면, 여전히 우리에게 불가능처럼 여겨지는 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간구와 기도를 이뤄 주십니다. 

 

개역개정에 21절은 없음으로 나와 있는데, 관주에 보면, 다른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습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2-23)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하셨던 말씀(16장)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라 앞으로 또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면 대게는 좋지 않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복해서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고서는 예수님께서 ‘구원자’로서 사역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를 잘 못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성령을 받고서는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고, 박해와 순교의 두려움을 벗어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도, 아직 잘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모든 죄의 짐을 벗어 버리게 됩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24-27)

 

 24절부터 마지막까지 성전세금을 내는 예수님의 이야기인데, 베드로가 세를 받는 사람에게 예수님도 세금을 내실 것이다 라고 말했기에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낚시를 해서 건져 올린 물고기 입 안에서 한 세겔을 얻어서 베드로와 예수님을 위해 세금을 내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 세금을 내시면서, 한 가지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원래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베드로가 1세겔 동전을 뱃속에 먹은 물고기를 잡도록 이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지금 성전 관리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순례자들에게 세금을 받지만, 예수님 때문에 양자된 성도들은 세금을 면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란 교훈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을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않으면 세금을 내야 하는데, 하나님의 가치와 기준으로는 그렇게 해당이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완벽한 의인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값을 치러 주셔서 베드로도 세를 면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님으로 인해 세를 면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점점 혼돈과 죄악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립니다. 속히 오셔서, 우리들을 구원하여 주시고, 이 악하고 험한 세상에서 참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증거하는 거룩한 성도 되게 도와 주옵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시어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주시고, 사모하는 심령에 만족을 주시고, 아버지의 뜻을 주님께서 이루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뜻을 이뤄 드리는 진실한 종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을 보게 하시고, 이 세상 마치는 날 주님 나라에 감사 찬송 올리며 올라가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값을 치러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주님이 필요한 영혼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며 함께 주님 나라에 이르게 하옵소서! 우리들을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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