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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설교

[사무엘하] 15장 압살롬 반역 사건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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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024-10-20 18: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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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1)

 

 압살롬이 다시 다윗을 만나기까지 5년이 흘렀습니다. 그 5년 사이에 다윗이 많이 늙은 것이지요. 압살롬은 늙은 아비를 보니까, 자신이 왕이 되어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위해 경호원을 붙이고, 기병들을 준비합니다. 왕의 위엄을 보이려면, 마치와 말 뿐만 아니라 그를 경호할 군사들을 준비시키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2-3) 

 

 압살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성문 곁에서 소송을 들어 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억울한 사람의 사연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고마움과 마음의 빚을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왕에게 전쟁터에 나서서 적을 무찌르고 안보를 든든이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보다는 개인적이고 가정적인 일부터 해결해 준다면 더 관심을 갖고 애정을 주겠지요. 우리 나라도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여럿 나오지 않았습니까?  압살롬이 바로 그러한 일을 시작합니다.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4)

 

 사실, 압살롬은 왕자이고 암논이 없으니 실질적인 장자입니다. 압살롬이 정말 공의와 정의로 재판하여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면, 아버지 다윗에게 재판관이 될 수 있도록 부탁을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하면, 실질적으로 재판을 담당하던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 율법과 그 동안에 행해지고 있던 재판에 관한 지식이나 판례들을 배울 수 있었겠지요. 

 

 사실, 다윗에게 오는 사건은 하급 법정(?)에서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에 대해서 어떤 미완결 종결결이나 왕의 권위-사형언도 같은-가 필요한 것 뿐일 것입니다. 압살롬은 정치적인 쇼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정의와 진리의 수호자 같은 이미지를 심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5)

 

 성문 곁에 다윗의 장자(원래는 차자)이자 왕자인 압살롬이 있습니다. 그를 알아본 사람은 왕자 앞에 절을 하려고 하겠지요. 다윗 왕에게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은 그런 사람을 잡아 세우고, 유대식 인사를 나누면서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이렇게 하지 않는데, 압살롬이 오버(?)를 합니다.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6)

 

 이런 식으로 압살롬이 재판관처럼 행동하는데, 무려 4년이나 이렇게 합니다(7).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자기 아버지에게 가서 ‘헤브론’으로 가서 서원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 왕이나 다른 신하들이 압살롬이 성문 곁에서 백성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정을 들어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전혀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왕의 신하들이나 다윗 왕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왕에게 올라와야 할 민원(?)들이나 문제들이 없다고 기뻐하면서 평안히 지내고 있었을까요? 아무튼, 자녀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무엇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는 아버지처럼 다윗이 느껴집니다. 압살롬이 호위병을 세울 때라든지, 병거와 말들을 타고 다닐 적에, 다윗이 자기의 후계 승계를 누가 할지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압살롬이 반역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내 뒤는 솔로몬이 오른다!’ 이렇게 확실하게 해 놓든지 하지 않으니까, 압살롬이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곧 왕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코스프레를 하지 않습니까? 

 

 “사 년 만에 압살롬이 왕께 아뢰되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내가 헤브론에 가서 그 서원을 이루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아람 그술에 있을 때에 서원하기를 만일 여호와께서 반드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리이다 하였나이다.”  (7-8)

 

 D-데이를 정하고 반역할 준비를 마친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반역하는 일을 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다윗 왕은 여호와께 서원 제물을 드린다고 하니까, 무슨 서원인지 묻지도 않고 허락을 합니다. 아마도 압살롬의 그 서원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시지 않았어도, 명분은 ‘종교’를 이용합니다. 압살롬 생각에는 아버지 다윗이 베냐민 지파의 사울로부터 왕권을 유다 지파쪽으로 가져온 것을 ‘야훼신앙’을 단지 이용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오늘날도 정치인들이 실제로 믿음도 없으면서, 불교나 기독교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면서 자신도 신앙이 있는 것처럼 접근해서 표를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입니다. ‘왕권 신수설’ 같은 명분을 얻어야 다른 장군이라든지, 명망 있는 인사가 반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왕이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니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9)

 

 다윗이 아무 의심이 없지요. 설마 압살롬이 반역을 하겠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에는 조력자가 있었는데, 아히도벨입니다. 그는 엘리암의 아버지요, 죽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할아버지입니다. 원래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謀士)였는데, 손녀를 범한 다윗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생겨서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합니다. 압살롬은 어느 정도 민심(民心)을 얻었기에 주요 인사들 약 200명 정도를 헤브론에 초대하여 이들도 마치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에 협력하는 것처럼 꾸밉니다. 

 

 “이에 압살롬이 정탐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 두루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 하라 하니라. 그 때 청함을 받은 이백 명이 압살롬과 함께 예루살렘에서부터 헤브론으로 내려갔으니 그들은 압살롬이 꾸민 그 모든 일을 알지 못하고 그저 따라가기만 한 사람들이라.” (10-11)

 

 압살롬이 다른 지파들에게 전령을 보내서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반역하는 장소가 ‘헤브론’일까요? ‘벧엘’이나 ‘실로’라든지 다른 곳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기 때문에 다윗의 지지기반이었던 정치적 고향에서 인정을 받아야 이 반역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12)

 

 드디어 헤브론에서 압살롬이 반역을 공식화 합니다. 그동안 다윗에게 반감이 있던 사람들과 지파들이 합세(合勢)합니다. 대표적으로 베냐민 지파가 그러했을 것입니다. 사울 왕의 후손들이 권력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 다윗의 책임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울을 배반하고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들의 반란을 도와서 다윗에 대한 복수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왕에게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았다가 압살롬에게 거절당한 사람들이 그 이간질에 속아서 다윗 왕보다는 압살롬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 다윗이 예루살렘에 함께 있는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 (13-14)

 

 뒤늦게 다윗이 압살롬의 소식을 듣고, 민심을 살펴 보지만, 다윗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헤브론에서부터 압살롬을 따르는 군사들이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15-16)

 

 다윗은 일단 궁을 버리고 도주합니다. 단지 후궁 10명 만을 남겨두고 많은 신하들과 함께 피난길을 떠납니다. 왜 다윗은 예루살렘 궁에서 수성전을 하지 않았을까요? 다윗의 곁에는 용장 요압을 비롯해서 수많은 장수들이 있을 텐데 … 아마도 다윗 곁에는 당장에 다윗을 지켜 줄 군사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다윗의 수많은 용사들이 외부로 파견을 나갔거나 예루살렘 수도로부터 먼 곳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다윗이 압살롬에게 가담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그 규모도 아직 파악이 안 되었고, 예루살렘 성 안에 압살롬을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지요.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 서니,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17-18)

 

 다윗이 피신할 때, 함께 생사고락을 했던 이방 사람들도 왕궁에서 나갑니다. 다시 다윗과 함께 고생을 하겠다는 것이지요. 최소한 압살롬을 따르지 않고, 다윗 만을 바라보고 온 사람이 최소한 600명이 됩니다. 다윗은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이 참람한 상황에서 이방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말하지만, 이들은 목숨이 끝날 때까지 다윗과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19-20)

 

 이 잇대 같은 사람은 다윗에게 참 위로가 되는 사람이지요. 그렇게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도 아닌 데, 다윗 왕을 옆에서 보필하겠다고 합니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온 땅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길로 향하니라.” (21-23)

 

 이 사람이 어떻게 여호와를 인정하고 섬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다윗과 같은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배반하지 않고, 충성을 다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피난길에 선봉의 역할을 하게 합니다. 먼저 길을 나서서 어떤 기습이나 매복에 빠져서 다윗과 그 일행들이 어려움을 당치 않도록 앞장을 섭니다.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24-25)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도 다윗과 함께 피난길에 오르려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 나옵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시 예루살렘 성에 원위치 시킵니다. 왕도에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가 은혜를 입으면,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돌볼 수 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26)

 

 압살롬의 반역이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신은 왕위를 빼앗겨도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다윗이 고백하지요. 이런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늘 다윗은 충신 우리아를 죽였던 일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하고 범죄했던 자신을 질책했겠지요.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도로 메어다 놓고 거기 머물러 있으니라.” (27-29)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내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소식을 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다윗에게 소식을 전할 사람은 제사장들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입니다.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30)

 

 다윗은 피난을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악도 떠올랐겠지만, 암논이 죽은 일과 딸 다말이 성폭행을 당한 일이며, 압살롬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도록 요압이 꾸민 일 등등. 앞날이 참 걱정이 됩니다. 자신이 죽고 압살롬이 왕이 되면 이스라엘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까지.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풀고 맨발로 가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며 은혜를 간구하겠지요.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되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31)

 

 다윗에게 압살롬의 패거리에 대한 소식이 하나씩 들어옵니다. 안타깝지만 자신의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 곁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다윗 곁에는 지금 모사가 없는데, 이 재앙을 막아줄 사람이 기도의 응답처럼 다윗에게 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를 때에 아렉 사람 후새가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온지라.” (32)

 

 드디어 다윗에게도 모사가 생겼습니다. 다윗은 즉시 후새에게 자신과 함께 하지 말고, 압살롬에게 접근해서 그들의 계략과 전략이 무엇인지 파악하게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다윗 편이기에 그들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으로부터 정보를 얻게 도와 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누를 끼치리라. 그러나 네가 만일 성읍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말하기를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전에는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었더니 이제는 내가 왕의 종이니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리라.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네가 왕의 궁중에서 무엇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알리라.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히마아스아비아달의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가 듣는 모든 것을 그들 편에 내게 소식을 알릴지니라 하는지라.” (33-36)

 

 다윗은 후새에게 압살롬 곁에 붙어서 정보를 주고, 아히도벨이 어떤 계략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파악하고 계락을 막아달라고 합니다. 압살롬이 후새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다윗을 배반하고 자기에게로 온 것이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다윗은 피난 중에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겸손하게 자기 죄를 다시 자복하면서 행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혹시 재난이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혹시 하나님께 잘못한 일은 없는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알고 있는 죄 때문이지만, 우리에게도 죄가 있기 때문에 닥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어려움과 재난이 꼭 우리 죄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우리 자신의 잘못 때문임을 알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며, 죄를 두려워 하여 주의를 기울여서 범죄하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단속하고 자녀들과 가정을 잘 살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의 친구 후새가 곧 성읍으로 들어가고 압살롬도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37)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하는 것을 봅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비슷한 모습이 아닌 지 돌아봅니다. 큰 은혜와 용서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권좌를 노리고, 아버지와 백성들 사이를 이간질 하여 자신을 따르게 한 압살롬. 

 

 아무런 생각없이 압살롬을 따르는 일반 민중들처럼, 우리들도 세속에 빠져 아버지께 큰 불의를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후새와 같은 사람, 잇대 같은 사람, 사독 같은 사람을 붙여 주셔서 그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며 인도하심을 봅니다. 

 

 우리가 어리석어서 죄악을 범하더라도 주님께로 돌이킬 수 있게 하시고, 진실한 회개와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의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주님 앞에서 충성스러운 주의 자녀가 되게 도와 주옵소서! 감사하며, 존귀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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