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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13장 암논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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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0회 작성일 2024-10-06 1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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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1-2)

 

 다윗이 간음하고 살인교사한 일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는 용서하셨지만, 징벌이 남았습니다. 그 징벌이 다름 아닌 자기 딸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참 말씀이 이상하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큰 아들 암논이 이복(異腹) 누이 다말을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다(?)라고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다말이 시집을 갔으면 어찌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까? 다윗 시대 당시에는 근친혼이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물론,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졌다면 그렇게 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다윗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도 백성들에게 그 부분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계속 읽어가면, 그렇게까지 근친혼에 대해서 금지했다는 말이 다윗이나 그의 자녀들이나 신하들이나 심지어 선지자에게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튼 2절에서 율법적으로 ‘그녀는 누이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 알고’ 해야 맞습니다. 수많은 여자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자기 여동생을 사랑(?)해서 음욕이 불일듯이 일어납니까? 아무래도 다윗이 자기 욕구를 채우기에는 바빴지만, 아들들의 배우자를 찾아주는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이성에 관심을 갖고 서로 교제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안 그러면,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어른들이 동성애까지 인정해 주자 하면서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는데, 혼기가 차면 빨리빨리 짝을 찾아 줘야 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참 지혜로웠던 것 같습니다. 10대 때 미리미리 짝을 찾아주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큰 아들 암논의 짝을 일찍 찾아주고 혼인을 시켰다면, 좋았을 것을 다윗이 아버지 노릇은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암논의 욕정을 풀 수 있게 악한 꾀를 주는 사람이 다가오지요.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3)

 

 사촌인데, 아주 간교한 자입니다. 다윗에게는 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고 바로 잡아 주었지만, 암논에게는 오히려 악을 도모하는 가까운 친척이 있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듯이 암논이 악하기 때문에 그런 간교한 자가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아버지 다윗에게 이복 누이 다말이 좋으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려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 요나답이 하는 말은 쉽게 말해 기회를 만들어서 ‘성폭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4-5)

 

 큰 아들이 보통 왕위를 물려받기 때문에 아픈 척을 하면 다윗이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 않겠습니까? 그 때 아버지에게 여동생 다말을 시켜서 암논 자기가 먹고 싶은 빵을 자기 집에서 만들어서 먹여주게 하라고 말씀드리라는 것이죠. 그러면 분명히 다윗은 들어줄 것이고 그 때 기회를 봐서 겁탈을 하라고 합니다. 아주 잘못된 조언이고, 사악한 방법입니다.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6-7)

 

 다윗은 왜 암논이 그런 부탁을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습니다. 왜 다말을 시켜서 빵을 만들게 하느냐 묻지 않습니다. 다른 훌륭한 요리사가 많은데, 그리고 좋은 의사도 왕의 곁에는 있을 텐데, 의사를 붙여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암논이 해 달라는 대로 다 들어줍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이 요구한다고 해도 다 들어주면 안 됩니다. 때로는 동기와 목적을 살펴야 합니다.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8-9)

 

 딸 다말은 아버지이자, 왕의 명령이니까 잘 순종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완전히 신세를 망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인간적으로 아무리 육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라도 그 명령이나 시키는 일이 잘못될 수 있고, 큰 상처나 아픔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다말이 이런 일을 안 당할 방법이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막아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를 최고로 두어야 합니다. 지금 다윗이 범죄한 것 때문에, 밧세바의 가족들 받을 고통을 다윗 자신도 당해 보는 것입니다. 

 

 다윗의 모사 중에 아히도벨이 있습니다. 이 아히도벨이 밧세바의 할아버지인데, 자기 손녀를 범한 다윗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없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압살롬이 다윗을 반역할 때, 압살롬의 모사가 되어서 쿠데타를 일으키고 다윗을 속히 제거하기 위해서 자신에게 군사 1만명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0)

 

 이 다말은 아버지 말씀만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이복오빠지만 오빠 말도 잘 듣습니다. 음식도 잘 만듭니다. 다윗의 딸이면 공주 아닙니까? 그리고 자기 외할아버지는 그술 왕입니다. 외가도 왕가고 그런데 직접 음식을 할 줄 알면 참 대단한 것 아닙니까? 부자만 되어도, 가사 도우미를 쓰려는 여성들이 많고 손가락에 물 한방울 안 묻히려고 하는데, 직접 요리를 하다니요.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우면 암논이 여동생을 겁탈하려고 합니까? 완전히 1등 신부감이지요.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1-12)

 

 암논이 본색을 드러냅니다. 다말이 거절은 하지만, 아버지의 체면도 있고, 정식 절차를 밟아서 아내를 삼으라고 합니다.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3)

 

 다말은 아버지께 말하면, 암논이 다말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일이 율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당시 사회 관습으로는 통용된 일이라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암논이 다말을 아내로 삼아서 사랑하기 보다는 단지 육체적 쾌락을 즐기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다말이 아무리 간곡하게 부탁을 해도 암논은 이미 짐승이 되어 버렸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4-15)

 

 암논이 위력으로 다말을 성폭행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구를 풀었으니 이제 다말보고 꺼지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그냥 성욕을 푼 것 뿐이지요. 그런데 다말은 정절(貞節) 관념이 있습니다. 아마 당시에는 이런 문화가 있는 것 같은데, 성경에도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희박한 관념이지요. 다말은 자신의 정조를 빼앗겼으니, 암논의 아내로 그 집에 있으려고 합니다.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6)

 

 암논이 성폭행한 것보다 다말 자신을 아내로 삼지 않고 버리는 것이 더 큰 죄악이라고 합니다. 율법에도 총각이 처녀를 범하면, 딸의 부모에게 지참금을 주고 데려와서 평생에 버리지 못할 아내로 삼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말은 정절도 있는 여자고 어쩌면 율법도 아는 여자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17-19)

 

 다말은 참 억울한 여성입니다. 그녀가 잘못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온갖 수모와 고통은 다 당합니다. 그리고 앞날은 이제 불투명한 것이지요. 몸은 버렸고, 왕가의 이 비극적 소식이 일반 백성들에게 얼마나 빨리 퍼지겠습니까? 그리고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전혀 잘못없는 이 다말을 욕하면서, 암논을 유혹하고 꼬리를 쳤다고 누명을 씌울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일들입니다. 

 

 예수님도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서 매맞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죽으시지 않았습니까?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아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는 나라를 위해서 충성한 것 뿐인데, 아름다운 아내를 두었기에 왕에게 빼앗기고 자신은 죽임을 당하고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 죄도 없고 잘못이 없어도 세상이 불의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잘못하셨느냐? 여기서 하나님께서 무슨 불의를 지시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 두면, 이렇게 됩니다. 

 

 무슨 다윗을 꼭 징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작전을 짠 것이 아닙니다. 그냥 놓아두면, 인간은 자연히 알아서 범죄하고 타락하고 서로 죽고 죽이며 미워합니다. 우리 인간 속에 있는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 않는 이상, 우리들은 우리 죄 때문에 자연스럽게 악을 행하고 그 악으로 고통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0)

 

 이 사건을 친오빠인 압살롬은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습니다. 무언가 아버지의 징계가 있을 것을 기대했는지 모르지만, 마음 속으로 ‘두고 보자! 반드시 암논을 죽이리라.!’ 다짐합니다.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1)

 

 다윗은 암논의 성폭행 범죄를 듣고 화를 내었지만, 암논에게 무언가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냥 화를 내고 끝입니다. 왜 다윗은 암논을 책망하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세자로서의 자격을 박탈시켜야 했습니다. 아마 다윗은 자신이 간음을 저질렀기 때문에 아들의 죄를 책망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압살롬은 다말이 당한 일에 대해서 다윗이 무언가 조치를 취할 줄 알았지만 전혀 없음을 보고, 아버지에 대해서 반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암논이 앞으로 왕위를 이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22)

 

 압살롬이 암논에게 가서 다말을 대신해 따지거나 묻지 않았습니다. 원래 말없는 사람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압살롬은 조용히 마음 속에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지요. 무려 2년이나 조용히 준비합니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만 이 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 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압살롬이 왕께 나아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 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데리시고 당신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 하니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이제 우리가 다 갈 것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하니라 압살롬이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지 아니하고 그에게 복을 비는지라.” (23-25)

 

 압살롬이 양 털 깎을 시기에 자기 집에서 잔치를 벌입니다. 모든 왕자들을 초청합니다. 그리고 다윗까지 초대를 하지요. 아마 압살롬의 계획에는 다윗과 암논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거절을 하지요. 이런 것을 보면, 기가 막히게 죽을 자리는 피하는 다윗입니다. 

 

 “압살롬이 이미 그의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그를 죽이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기를 내라 한지라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의 명령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28-29)

 

 압살롬이 자기 종들을 시켜서 암논이 술에 취해 있을 때, 싸인을 주면 제거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살인하는 것은 지 아버지를 꼭 닮았습니다. 다윗도 요압을 시켜서 암몬과의 전쟁에서 우리아를 사지로 몰아넣지 않습니까? 압살롬의 종들이 그렇게 실행을 합니다. 암논은 설마 자기 동생이 자기를 죽이겠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잔치에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다른 동생들처럼 도망도 가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암논은 자기의 죄값을 이렇게 해서 치릅니다. 반면, 압살롬은 어떻게 됩니까? 자기 여동생을 성폭행한 복수를 하고 살인죄로 처벌받을까봐 외가로 피신합니다. 아마 그곳에서 계속 살려했던 것 같습니다. 

 

 졸지에 다윗은 맏아들을 잃었고, 둘째는 도망을 갔으며, 딸은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일반 백성들에게도 체면이 말이 아니고,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이런 아픈 가족사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이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왕이 곧 일어나서 자기의 옷을 찢고 땅에 드러눕고 그의 신하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아뢰어 이르되 내 주여 젊은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30-32)

 

 처음 다윗은 압살롬에게 모든 아들들이 죽임을 당한 줄 았았습니다. 큰 상심에 빠져있을 때, 압살롬에게 악한 꾀를 주었던 요나답이 다윗에게 와서 압살롬을 두둔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압살롬의 계획을 다 알고 있으면서, 다윗에게는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왕자가 죽도록 내버려 두고, 압살롬이 살인하도록 악한 계획을 세워준 놈이 바로 이 놈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 줄로 생각하여 상심하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하니라.” (33)

 

 병주고, 약주면서 다윗 왕가에 서로 내분이 잃어나게 만드는 이 악한 요나답. 이런 간신들이 압살롬 곁에 있습니다. 

 

 “요나답이 왕께 아뢰되 보소서 왕자들이 오나이다 당신의 종이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하고, 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소리를 높여 통곡하니 왕과 그의 모든 신하들도 심히 통곡하니라.” (35-36)

 

 다윗은 곁에 나단 선지자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서, 죄악을 범했지만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암논이나 압살롬 곁에는 요나답과 같은 간교한 자가 있어서 하나님과 왕 앞에 큰 죄를 짓게 했습니다. 우리들 곁에는 지금 누가 있습니까? 이 땅에 완전한 사람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성경이 주어졌고,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이 말씀을 통해서 들어야 하겠습니다. 정도(正道)를 걷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삼 년이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37-39)

 

 (기도) 하나님 아버지! 잘못된 친구는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버림을 받게 합니다. 또한 죽음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우리 곁에 요나답과 같은 간교한 자가 없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성령을 의지해서 범죄하지 않고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주옵소서! 

 

 죄의 댓가는 처절한 무력감과 고통과 아픔입니다. 다윗이 큰 범죄 후에 자녀도 잃고 명예도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들과 백성들에게 권위도 잃어 버렸습니다. 주님! 죄가 우리들을 파멸의 길로 빠져들지 않게 도와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 매여 사는 것이 큰 은혜임을 깨달아 오늘도 주님께 매여 살게 도와주옵소서!  감사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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